실패를 경험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AI와 과잉보호가 만든 세대


뉴질랜드 놀이터의 오후였다. 아들이 낮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리다가 손을 놓쳤다. 그리고 1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다.

나는 놀라서 달려갔다. 본능이었다.

“괜찮아?” 아들은 놀란 표정으로 일어나 무릎의 흙을 털었다. 작은 긁힌 상처가 있었다. 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무를 다시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아빠, 나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 빨리 달려온 건 아닐까?

물론 사고가 나면 절대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작은 상처는? 필요한 게 아닐까? 넘어지는 법을 배우고,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높이를 판단하는 법을 배우는…

부모로서 나는 늘 이 경계선에서 고민한다. 언제 달려가야 하고, 언제 지켜봐야 하는지.


AI가 실수하지 않는 시대, 실수가 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 자랐던 나는 고무 바닥이 깔린 놀이터를 당연하게 여겼다. 미끄럼틀 아래 푹신한 매트, 울타리로 둘러싸인 안전 공간. 하지만 뉴질랜드에 와서 충격을 받았다. 놀이터 바닥은 나무 칩이고, 아이들은 3미터 높이의 나무 구조물을 마음대로 오른다. 어른의 감독도 최소한이다.

역설적인 통계가 있다. 5년에 걸친 연구 결과, 유럽의 “모험 놀이터”(나무, 흙, 위험 요소 포함)는 전통적인 고정 장비 놀이터보다 부상률이 4.3배 낮았다. 더 위험해 보이는 환경이 실제로는 더 안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위험을 인식하고, 자신의 한계를 배우고,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더 큰 실패의 기회 제거를 목격하고 있다. 바로 AI다.

ChatGPT에게 물으면 항상 최선의 답이 나온다. 틀릴까 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시행착오할 이유도 없다. 터키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ChatGPT 무제한 접근권을 줬다. 결과? 연습 문제 정확도는 올랐지만, 이후 시험 점수는 떨어졌다. AI는 단기 성과를 가능하게 했지만, 장기 학습을 방해했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Dr. Ying Xu는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이 문제에 막혀서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생산적 고군분투’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이해를 구축할 공간과 시간을 만들기 때문에 학습에 도움이 된다.”

AI는 그 공간을 없앤다.


실패가 뇌를 바꾼다

Carol Dweck의 획기적인 연구가 있다. 5학년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과제를 줬다. 한 그룹에겐 “너는 똑똑하구나”라고 칭찬했고, 다른 그룹에겐 “너는 열심히 노력했구나”라고 말했다.

다음 라운드에서 어려운 문제를 줬을 때, “똑똑하다”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67% 더 적은 지속성을 보였고, 성과가 저하됐으며, 심지어 동료에게 점수를 거짓말로 부풀렸다. 반면 “노력했다”는 피드백을 받은 아이들은 실패 후에도 지속했고, 성과가 30% 향상됐다.

더 놀라운 것은 뇌과학 연구다. 심리학자 Jason Moser는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이 실수 후 **더 큰 신경 신호(Pe)**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뇌는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조율되어 있었다.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실수를 회피했다.

MIT의 Earl K. Miller 교授는 이렇게 설명한다: “뇌 세포는 최근 행동이 성공적이었는지 추적한다. 성공 후, 전전두엽 피질과 선조체의 뉴런이 정보를 더 날카롭고 효과적으로 처리한다.” 실패는 학습을 위한 신경화학적 조건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빼앗고 있다.


“축구 엄마의 비극”

Nassim Taleb은 그의 책 『안티프래질』에서 “반취약성(antifragility)” 개념을 소개한다. 유리잔은 충격에 깨진다(취약함). 금속 상자는 충격을 견딘다(견고함). 하지만 근육은 다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강해진다(반취약함).

아이들은 근육과 같다. 스트레스로부터 강해진다.

Taleb은 생물학자 E.O. Wilson의 말을 인용한다: “아이들의 발달에 가장 큰 방해물은 ‘축구 엄마’다. 그들은 아이들의 삶에서 시행착오를 제거하려 하며, 아이들을 모호함을 다루지 못하는 괴짜로 변화시킨다. 좋은 학생이지만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다만 더 느린.”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 10-19세 아동 7명 중 1명이 정신 장애를 겪는다. 미국 CDC는 어린이 불안 진단이 2007-2012년 사이 20% 증가했다고 보고한다. 캐나다에서는 젊은이들의 정신 건강 불량 비율이 2003년 24%에서 2019년 40%로 급증했다.

우리가 아이들을 더 보호할수록, 그들은 더 불안해지고 있다.

53개 연구를 분석한 메타분석은 “헬리콥터 부모 양육”이 불안, 우울, 낮은 자기효능감, 나쁜 학업 성과와 연관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2,229명을 추적한 네덜란드의 종단연구는 초기 청소년기 부모의 과잉보호가 청소년기 전체에 걸쳐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고 보고했다.


실리콘밸리는 알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은 실패의 가치를 안다.

Jeff Bezos는 2015년 주주 서한에서 이렇게 썼다: “실패와 발명은 분리할 수 없는 쌍둥이다. 발명하려면 실험해야 하며, 미리 성공할 것을 안다면 그것은 실험이 아니다.” Amazon은 Auctions와 zShops 실패 후 Marketplace를 만들었다. 지금 Amazon 판매의 50%가 Marketplace다.

Steve Jobs는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말했다: “Apple에서 해고당한 것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다. 성공의 무게가 초보자의 가벼움으로 대체되었다.”

Google X(Moonshot Factory)는 프로젝트를 종료한 팀에게 박수, 포옹, 보너스를 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빠르게 학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LinkedIn 창업자 Reid Hoffman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실리콘밸리에서 실패를 축하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습을 축하한다.”

차이가 있다. 목표는 실패가 아니라 빠른 학습이다.


완벽한 답은 없다

4살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놀라서 달려갔다. 본능적으로. 그리고 아마 다음에도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작은 상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넘어지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일어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AI 시대에 우리는 더 큰 질문에 직면한다:

  • 우리는 자녀를 “길에 맞추고” 있는가, 아니면 “길에 대비시키고” 있는가?
  • AI가 모든 답을 줄 때, 우리 아이들이 여전히 “생산적으로 고군분투”할 기회를 갖는가?
  • 단기적 안전을 위해 장기적 회복탄력성을 희생하고 있지 않은가?

노르웨이 심리학자 Ellen Sandseter는 경고한다: “아이들이 적절한 연령의 위험한 놀이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받으면 사회에서 신경증이나 정신병리 증가를 관찰할 수 있다.”

실패는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뇌는 실수를 통해 배우도록 설계되었다. 근육은 스트레스를 통해 강해지도록 설계되었다. 아이들은 실패로부터 회복탄력성을 배우도록 설계되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제거할 때, 우리는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약화시키고 있다.

나는 여전히 아들이 넘어질 때 놀라서 달려간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 작은 긁힌 상처가, 흙이 묻은 무릎이, 다시 도전하는 모습이 – 그것이 바로 성장이라는 것을.

완벽한 부모는 없다. 우리는 모두 그 경계선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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