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국천재’야”: AI는 흉내 낼 수 없는 아이들의 ‘말장난’이 중요한 이유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아이가 뜨끈한 소고기 무국을 한 숟가락 크게 뜨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엄마, 엄마는 진짜 ‘국천재’야!”

‘국천재’. 국을 기가 막히게 끓이는 천재라는 뜻일 게다. 아이들은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한국어를 우리 부부에게서만 제한적으로 배운다. 당연히 교과서나 유튜브 어디에도 없는 단어다. 국물이 주는 뜨끈한 감동과 요리한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은데, 아는 단어는 한정되어 있으니 아이는 스스로 단어를 ‘조립(Assemble)’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식탁에서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나는 그 순간 묘한 전율을 느꼈다.

GPT-4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1초 만에 짓고, 복잡한 비즈니스 이메일도 완벽하게 써낸다. 하지만 과연 AI가 뜨거운 국물을 맛보고 ‘국천재’라는, 사전에 없는 단어를 맛깔나게 발명해 낼 수 있을까?

AI가 문법적으로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는 시대.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올바른 맞춤법보다, 단어를 레고 블록처럼 부수고 조립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이 **’엉뚱한 파괴력’**일지 모른다.

1.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장난감’이다: 확률 vs 의도

우리는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이가 틀린 말을 쓰거나, 없는 단어를 만들면 “그런 말은 없어, ‘국 요리사’라고 해야지”라며 교정하려 든다. 이것은 아이를 ‘AI 모델’처럼 훈련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AI와 인간의 언어 생성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AI(LLM)는 ‘확률(Probability)’에 기반한다. ‘국을 먹었다’ 뒤에 올 단어로 ‘맛있다’, ‘시원하다’, ‘뜨겁다’가 올 확률이 높으므로 그 단어를 선택한다. AI에게 ‘국천재’는 확률값 0에 수렴하는 ‘오류(Error)’이자 ‘노이즈’다. AI의 목표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 아이는 ‘의도(Intention)’와 ‘놀이(Play)’에 기반한다. 아이는 언어학자 촘스키(Noam Chomsky)가 말한 ‘생성 문법’의 능력을 타고났다. 아이는 ‘국’의 속성과 ‘천재’의 속성을 파악한 뒤, 이 둘을 결합했을 때 상대방(엄마)이 기분 좋아할 것이라는 ‘사회적 맥락’까지 계산하여 단어를 발명했다. 이것은 ‘개념적 혼성(Conceptual Blending)’이라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다.

  • AI의 언어: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논리적이며, 표준적이다. (수렴적 사고)
  • 아이의 언어: 문법이 깨져 있고, 비논리적이며, 파격적이다. (확산적 사고)

AI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아이는 언어를 ‘가지고 논다’. 이 차이가 창조의 시작점이다. AI 시대에 ‘정확한 언어’는 0원의 가치를 가진다. 번역기와 교정기가 무료로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피식 웃게 만드는 ‘불완전하지만 매력적인 언어’는 오직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2. 결핍이 만든 창조: ‘이중언어’의 빈틈

아이들이 외국 학교에 다니며 한국어를 ‘학습’이 아닌 ‘생활’로 배우는 환경은, 역설적으로 이런 창의성이 자라나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아이들에게 한국어 어휘는 부족하다. 이것은 ‘결핍’이다. 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넘친다. 이 괴리(Gap)를 메우기 위해 아이의 뇌는 풀가동된다.

“엄마, 내 발이 ‘눈물’을 흘려.” (땀이 난다는 단어를 모를 때)

“아빠, 쉬 색깔이 ‘맥주’ 같아!” (진한 소변을 봤을 때)

‘발의 눈물’이나 ‘맥주 색 소변’이라니. 어른이라면 “발에 땀이 났다”, “소변 색이 진하다”라고 건조하게 팩트만 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아는 가장 유사한 시각적, 감각적 이미지(눈물, 맥주)를 끌어와 상황을 묘사했다. 이것은 시(Poetry)가 탄생하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기존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은유와 환유를 동원하는 것이다.

풍족한 데이터는 성능 좋은 AI를 만들지만, 적절한 ‘언어적 결핍’은 창의적인 예술가를 만든다. 완벽하게 2개 국어를 구사하는(Bilingual)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언어 사이의 빈틈을 자신만의 언어로 채우는 ‘인터랭귀지(Interlanguage)’의 경험이다. AI 번역기는 이 빈틈을 0.1초 만에 ‘정답’으로 메워버리지만, 아이는 그 빈틈에서 ‘국천재’나 ‘맥주 쉬’ 같은 보석을 캐낸다.

3. 데이터가 말하는 ‘유머’와 ‘지능’의 상관관계

“말장난을 잘하면 머리가 좋다”는 속설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

뉴멕시코 대학의 진화 심리학자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 등의 연구진은 ‘유머 능력과 일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 사이의 강력한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연구에 따르면, 재미있는 캡션을 달거나 언어유희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추상적 추론 능력과 언어 지능이 높았다. 유머는 뇌가 ‘고정관념’이라는 효율적인 경로를 이탈하여, 순식간에 서로 관련 없는 개념을 연결하고 새로운 경로를 개척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천재’라는 단어는 문법적으로는 틀렸을지 몰라도, ‘의미 전달 효율성(Communicative Efficiency)’ 측면에서는 ‘요리를 아주 잘하시네요’보다 100배 강력하다. 짧은 세 글자 안에 ‘맛에 대한 평가’, ‘요리 실력에 대한 인정’, ‘엄마에 대한 애정’, 그리고 ‘웃음’까지 압축했기 때문이다.

AI는 농담을 ‘학습’해서 할 수는 있어도, 상황에 맞는 농담을 ‘발명’하지는 못한다. 유머는 인간 지성의 최전선이다.

4. ‘순수한 창작’을 지키는 교육: 교정하지 말고 감탄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국천재’ 같은 순간을 어떻게 지켜줘야 할까? AI가 정답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아이의 ‘오답’을 지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1. ‘빨간 펜’을 버려라 (수용):아이가 “엄마는 국천재야!”라고 했을 때, “국 요리사라고 해야지”라고 정정해 주는 것은 창의성의 싹을 자르는 행위다. 대신 “와, 국천재라니! 세상에 없는 단어인데 너무 멋진데? 아빠는 그럼 ‘설거지 천재’ 할까?”라고 반응해 줘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언어적 발명이 ‘수용’되었다는 효능감을 느껴야 더 많은 시도를 한다.
  2. ‘언어의 맛’을 즐겨라 (향유):AI는 텍스트를 ‘정보(Information)’로 처리한다. 하지만 인간은 텍스트를 ‘맛(Taste)’으로 느낀다. 의성어, 의태어, 그리고 아이들이 만들어낸 엉뚱한 신조어는 정보값은 낮아도 감정값은 높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 논리적 정합성보다 이 ‘말의 맛’을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3. 말놀이를 주도하라 (자극):끝말잇기, 초성 퀴즈, 없는 단어 만들기 놀이를 의도적으로 해라. “냉장고와 코끼리를 합치면 뭐가 될까?” 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져라. 이것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 훈련이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1. AI는 언어를 ‘확률’로 계산하지만, 아이는 언어를 ‘놀이’로 창조한다. ‘국천재’나 ‘맥주 쉬’ 같은 표현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맥락적 창의성’이다.
  2. 데이터는 유머와 언어유희 능력이 높은 지능과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문법 파괴는 실수가 아니라 고도의 지적 유희일 수 있다.
  3. AI 시대의 언어 교육은 ‘표준어 습득’을 넘어, 언어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생각을 조립하는 ‘언어적 레고 놀이’가 되어야 한다. 결핍은 창조의 어머니다.

“엄마는 국천재야.”

이 투박하고 사랑스러운 문장 속에는, 알파고도 챗GPT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맛’과 ‘사랑’, 그리고 ‘인간성’이 담겨 있다. 그 순수한 창작의 순간들이야말로, 우리 아이가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 아름다운 증거다.

주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