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영어교육의 현실: 첫째를 영어 유치원에 보낸 후 달라진 선택

영어는 그대로였지만, 문제는 ‘수업’이었다 — 아이는 그 형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첫째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3년간 현지 데이케어를 다녔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 아이에게 영어는 한국어보다 익숙한 언어였다.

나는 고민했다. 갑자기 완전히 한국어만 쓰는 환경에 던져지면 언어적 충격이 클 것 같았다. 그래서 평판 상위권 영어유치원을 선택했다. 목적은 명확했다. 영어 실력을 키우려는 게 아니라, 이미 익숙한 영어를 유지하면서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완충 장치가 필요했다.

2년을 보냈다. 영어는 그대로 유지됐다.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가 아니었다. 아이는 “수업”이라는 형태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 “학습”이었다

선생님들이 반복해서 말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안 하고 돌아다녀요.”

뉴질랜드 데이케어는 완전히 놀이 중심이었다. 아이들은 실내외를 자유롭게 오가며 놀았다. 어떤 활동을 할지 스스로 선택했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됐다. 30분씩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한국 영유는 달랐다. “수업”이 있었다. 책상에 앉아야 했고, 선생님 말을 들어야 했고, 30-40분씩 한 가지에 집중해야 했다. 첫째에게 이건 고문이었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다. 영어는 이미 익숙했다. 문제는 4살, 5살 아이에게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라”는 요구 자체가 발달단계와 맞지 않았다는 거다.

정규 유치원도 이런 형태가 있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정규 유치원 교사들은 유아교육학을 전공하고, 이 나이대 아이들의 주의집중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어떻게 흥미를 유지시켜야 하는지 배운 사람들이다. 국가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을 따르고, 놀이 중심 활동이 기본이다.

영유는? 2025년 정부 조사 결과 교사의 66.5%가 유아교육, 아동발달 관련 자격증이 없었다(교육부 조사). 영어는 할 줄 알지만, 4-5세 아이의 발달 특성을 이해하고 다루는 전문성은 부족해 보였다.

내가 느낀 건 이런 부분이었다. 아이가 왜 집중을 못 하는지, 이 나이 아이들에게 뭐가 적절한지, 어떻게 흥미를 이끌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접근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집중 안 한다”, “돌아다닌다”는 피드백만 반복될 뿐이었다.

전직 영유 교사들의 증언이 있다. “아이들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교실엔 책상과 의자만 있고 장난감이 없다”, “30-40분 동안 이해 못 하는 말을 듣고 앉아있어야 한다”(경향신문 인터뷰).

우리 첫째가 겪은 게 바로 이거였다.

뇌과학이 말하는 건 “놀이”지 “수업”이 아니다

우리 케이스는 특수했다. 대부분의 한국 학부모는 제로베이스에서 조기 영어교육을 시작한다.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말에 이끌려서.

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2018년 하트쇼른 연구팀이 67만 명을 추적한 결과(연구 링크), 문법 학습의 민감기는 17.4세까지 이어진다. 3-5세는 음운 발달, 절차 기억 기반 문법 습득에 가장 유리한 시기다.

문제는 “최적기니까 학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워싱턴대학교 패트리샤 쿨 교수의 유명한 연구가 있다(연구 설명). 생후 9개월 아기들에게 중국어를 들려줬다. 한 그룹은 사람이 직접 말을 걸었고, 다른 그룹은 같은 내용을 TV로 들었다. 결과는 극명했다. 사람한테 배운 아이들은 중국어 음소를 구별했다. TV로 들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언어 습득은 단순 노출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그리고 유아기에는 놀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소통이 핵심이다.

뉴질랜드 데이케어가 그랬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웠다. 선생님은 놀이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썼다. 함께 요리하면서, 밖에서 뛰놀면서, 블록을 쌓으면서 언어가 흘러들어왔다.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됐다.

한국 영유도 나름의 프로그램은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 동안 집중해야 하는 “수업” 형태였다. 30-40분씩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연구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이중언어 환경은 명확하다(PMC 연구). 일주일에 깨어 있는 시간의 30-40% 이상을 그 언어에 노출되어야 하고, 실제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어야 하며, 최소 6-8년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아기에는 놀이 중심이어야 한다.

캐나다의 프렌치 이머전 프로그램은 5-6세에 시작하지만, 하루의 85-100%를 프랑스어로 수업한다. 수학도, 과학도, 미술도 프랑스어로 배운다(캐나다 정부 자료).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고, 최소 8년을 지속한다. 그래도 성공률이 100%가 아니다.

한국 영유는? 풀타임 기준 하루 5-6시간, 일주일의 30-35% 정도를 영어에 노출된다. 수치상으로는 최소 기준을 충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학원 밖은 완전히 한국어 세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캐나다 이머전은 5-6세부터 시작하지만 여전히 활동 중심이다. 한국 영유는 4-5세에게 앉아서 집중하는 수업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는 특수 케이스였다. 이미 이중언어를 쓰던 아이가 한국에 왔고, 언어 유지가 목적이었다. 영어는 유지됐으니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학부모는 다르다. 제로베이스에서 “조기교육”을 시작한다. 월 200-300만원씩, 3년이면 7,200만원에서 1억 원을 쓴다. 그렇다면 이 투자는 10년 후에도 효과가 있을까?

장기 추적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결과가 있다.

독일의 예켈 연구팀은 276명의 학생을 5학년부터 추적했다(2017년 연구). 일찍 시작한 그룹이 5학년 때는 확실히 앞섰다. 그런데 7학년이 되자 늦게 시작한 학생들이 오히려 추월했다.

2020년 바우머트 연구는 더 크다. 독일 학생 19,858명을 9학년까지 추적했다(연구 링크). 6-7세에 시작한 그룹, 8-9세에 시작한 그룹, 10세 이후 시작한 그룹을 비교했다. 결론은? 9학년이 되자 실력 차이가 거의 없었다.

호주의 레인 스터디는 2,868명의 아이를 5세부터 10세까지 추적했다. 이중언어 아동들이 5세 때 영어 어휘가 낮았지만, 10세가 되자 차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베일리 연구팀의 2017년 메타분석(교육 연구)은 67개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효과는 개입 후 12개월 안에 50% 감소했고, 그 다음 1-2년에 또다시 절반으로 줄었다. 이걸 “페이드아웃 효과”라고 부른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 교육부가 2023년 처음으로 영유 효과를 조사했다(EBS 보도). 1,000명 이상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결과: 부모들이 기대했던 효과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컸다. 26.7%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답했고, 34.3%가 부모-자녀 갈등을 경험했다.

2024년 한국보육진흥원 연구(매거진한경 보도)는 더 충격적이다. 조기 학습 중심 사교육(영어 포함)이 학업 능력, 정서 발달, 성실성, 개방성, 타인에 대한 이해에 유의미한 효과가 없었다. 유일하게 통계적으로 확인된 효과는? 자존감 하락이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초반 6개월, 1년은 효과가 보인다. 발음이 좋아지고, 단어가 늘고, 간단한 테스트 점수가 나온다. 하지만 10년을 봤을 때, 3-5세에 시작한 아이와 6-7세에 시작한 아이의 차이가 거의 없다. 오히려 늦게 시작한 아이들이 따라잡거나 앞서는 경우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이거다. 단기 지표(발음, 단어, 점수)는 측정이 쉽다. 하지만 깊은 사고력, 모국어 문해력, 장기적인 학습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월 200-300만원씩 쓰는데 말이다.

둘째는 한국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첫째를 영유에 2년 보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영어 유지라는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게 전부였을까?

육아라는 큰 바운더리에서, 아이가 얼마나 건강하게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매일 “집중 안 한다”,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는 뭘 느꼈을까. 놀이 중심 환경에서 자유롭게 배우던 아이를, 책상에 앉혀놓고 30-40분씩 가만히 있으라고 요구한 건 옳았을까.

이 부분은 아이한테 많이 미안하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한국 어린이집에 보냈다.

이건 영유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첫째에게는 특수한 목적이 있었고(언어 유지), 그 목적은 달성했다. 많은 부모들도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집에서 영어를 같이 할 여유가 없고, 큰 돈을 내면 그만큼의 보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당연하다.

다만 내가 본 건 이거다.

첫째, 목적이 확실해야 한다. 영어 실력인가, 놀이를 통한 사회성 발달인가, 기본 생활 습관 형성인가. 한꺼번에 다 얻을 수 있다는 마케팅을 믿기엔, 현장에서 본 것과 연구 데이터가 너무 달랐다.

둘째, 4-5세는 “학습”보다 “놀이”가 필요한 나이다. 30-40분씩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건, 많은 아이들에게 발달단계상 무리다. 뇌과학은 이 나이가 언어 습득 최적기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놀이를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도 말한다. “수업”은 그게 아니다.

셋째, 장기 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단기적으로는 발음도 좋아지고 단어도 늘어난다. 하지만 10년을 봤을 때 3-5세 시작과 6-7세 시작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연구가 쌓이고 있다. 확실한 건 월 200-300만원이라는 비용뿐이다.

나는 둘째에게 그 돈을 다른 곳에 쓰기로 했다. 한국어로 충분히 놀고, 친구들과 갈등도 겪어보고, 기본 생활 습관을 배우는 시간. 영어는 6-7세, 한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다.

어디에 목적을 두느냐가 명확해야 한다. 이 나이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주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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