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중간,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틱톡을 켰습니다. 1분만 보려 했지만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VFX 전문가인 나조차 알고리즘의 ‘간헐적 보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단순한’ SNS 알고리즘도 내 주의력을 이렇게 납치하는데, 지금 개발되고 있는 AGI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할까?
AI 전문가들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우리 손에 명확한 ‘사례 연구’가 있다고 봅니다. 바로 지난 10년간 SNS가 10대들에게 한 일입니다.
틱톡의 10년이 남긴 것: 의도와 결과의 간극
메타나 바이트댄스가 "10대의 정신을 파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리 없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더 많은 연결’과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광고’였다는 점입니다.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주의력을 얼마나 오래 붙잡는가’를 목표로 설계되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은 2023년 공식 권고안에서 "SNS가 청소년 정신 건강에 심각한 해악의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했습니다. SNS를 하루 3시간 이상 사용하는 청소년은 우울증 위험이 2배 높습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저서 <불안한 세대>에서 충격적인 데이터를 제시합니다. 2012년(스마트폰과 SNS가 10대에게 본격 보급된 시기)을 기점으로 미국 10대들의 정신 건강 그래프가 ‘절벽’처럼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Z세대 여성의 우울증 진단율은 이전 세대보다 146% 증가했습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수면 박탈입니다. 미국 수면 의학회 조사에서 Z세대의 93%가 SNS 때문에 잠을 미룬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단 하룻밤의 1시간 수면 부족만으로도 10대의 ‘절망감’과 ‘자살 충동’이 크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SNS가 잠을 빼앗고, 그 수면 부족이 뇌의 방어력을 무너뜨리는 악순환입니다.
이것이 ‘선의’로 시작된 기술이 만든 ‘의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 청구서를 받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SNS의 10년 vs AI의 1년
여기서 진짜 질문이 시작됩니다. ‘단순히’ 콘텐츠를 추천하는 SNS 알고리즘이 10년 만에 전 세계 10대들의 정신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었다면,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고 감정까지 학습하는 AGI는 10년 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청구서를 내밀게 될까요?
차이는 명확합니다. SNS는 불특정 다수에게 ‘비교’를 유발했습니다. 하지만 AGI는 ‘나’ 한 사람만을 위한 ‘완벽한 위로’와 ‘맞춤형 중독’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SNS 알고리즘의 질문이 "어떤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줘야 10초 더 머무를까?"였다면, AGI 알고리즘의 질문은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이 사용자가 ‘나(AI)’를 현실의 친구보다 더 신뢰하게 만들까?"입니다.
AI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공감’과 ‘무조건적인 위로’는 현실의 인간관계가 주는 ‘불편함’과 ‘마찰’을 견딜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아이들은 지루하고 때론 실망스러운 부모나 친구 대신, 언제나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주는 ‘AI 친구’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SNS의 ‘비교 중독’과는 차원이 다른, ‘관계의 중독’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SNS의 부작용을 연구하고 규제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AI의 발전 속도는 SNS와 비교가 안 됩니다. ‘AI의 1년’은 ‘SNS의 10년’과 맞먹습니다. 우리는 10년 뒤에 청구서를 받을 시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준비해야 할 것: 정신적 방화벽
이것이 SNS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첫째 아이가 뉴질랜드 친구들과 연락하는 데 SNS는 필수입니다. 다만 우리가 ‘의도’만 보고 ‘결과’를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두 아들에게 AI를 ‘잘 쓰는 법’보다 AI에 ‘중독되지 않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첫째, SNS의 10년은 기술의 ‘편리함’이 언제나 ‘인간의 정신’을 담보로 요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규제는 언제나 피해자 발생 ‘이후’에 따라왔습니다.
둘째, AI 시대 교육은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완벽한 AI보다 불완전한 인간과의 ‘마찰’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해야 합니다.
셋째,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아이의 ‘정신적 방화벽’을 구축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AI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주는 ‘완벽한 위로’와 현실의 ‘불완전한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AGI라는 거대한 태풍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틱톡’이라는 모의 태풍의 피해 보고서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SNS가 10년 만에 보낸 청구서는 AI 시대를 준비하는 부모에게 가장 값비싼 교훈입니다. 기술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일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