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느끼지 못하는 미역 냄새

텃밭의 허브를 만지던 순간이었다. 손끝에 묻은 로즈마리의 끈적한 향이 코를 찔렀다. 그 순간 — AI는 이 ‘경험’을 결코 복제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AI가 ‘로즈마리(Rosemary)’라는 텍스트가 ‘휴식(Relax)’이라는 단어와 자주 연결된다는 것은 알아도, 내 손끝의 끈적임과 코를 찌르는 강렬한 향이 주는 ‘즉각적인 감각적 충격’은 모르기 때문이다.

AI는 텍스트를 읽고, 이미지를 분석하고, 영상을 학습한다. AI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디지털화가 용이한 감각들을 무섭게 정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최근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놀며 깨달았다. 파도 소리(청각)와 반짝이는 윤슬(시각)도 좋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몰입하게 만든 것은 축축한 모래의 ‘촉감’과 짠 내 섞인 ‘미역 냄새’였다.

AI가 완벽하게 구현한 ‘바다 풍경 4K 영상’이 결코 줄 수 없는 ‘날것(Raw)’의 경험이다. 심지어 그것이 ‘악취’일지라도, 그 역시 뇌를 깨우는 강력한 외부 자극이다. AI가 필터링해주는 ‘쾌적한’ 자극의 세계와는 정반대다.

AI 시대, ‘인간의 영역’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 나는 이 ‘코’와 ‘피부’라는, 가장 원시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각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AI의 ‘디지털 감각’ vs 인간의 ‘아날로그 감각’

AI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데이터화’다.

시각: 이미지는 수백만 개의 ‘픽셀(Pixel)’ 값이다.
청각: 소리는 ‘오디오 파형(Waveform)’ 데이터다.
텍스트: 언어는 ‘토큰(Token)’이라는 숫자 조합이다.

AI는 이 데이터들의 ‘패턴’을 학습한다. VFX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딥러닝은 ‘고양이’ 이미지 수백만 장을 보고 ‘고양이’의 시각적 패턴을 ‘인식(Recognize)’한다. 하지만 ‘촉각’과 ‘후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물리’이자 ‘화학’ 그 자체다.

촉각: AI는 ‘모래’를 ‘거친 질감의 베이지색 알갱이’라고 텍스트로 인식할 수 있지만, 우리는 ‘손가락 사이로 서늘하게 빠져나가는’ 감각을 우리 몸으로 ‘지각(Perceive)’한다. 이 감각은 내 ‘피부’라는 경계를 통해 들어오는 ‘육체적 경험(Embodied Experience)’이다.

후각: AI는 ‘장미 향’의 화학식(게라니올)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텍스트 학습을 통해 ‘장미’가 ‘사랑’과 자주 연관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냄새를 맡고 ‘할머니 댁 장독대’나 ‘스무 살 첫 데이트’를 떠올린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논리적이며, 감각적인 기억이다.

AI의 감각은 ‘분석적’이고 ‘분리’되어 있다. 반면 인간의 감각은 ‘경험적’이고 ‘통합’되어 있다.

AI에게 ‘미역 냄새’는 그저 ‘요오드와 특정 화합물의 조합’이라는 분석 정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 그것은 ‘바다’, ‘모래성’, ‘휴일’의 기억과 ‘축축한 바람’, ‘차가운 물’의 다른 감각들과 뒤엉킨 ‘경험의 총체’다.

결국 AI는 ‘정보’를 처리하고,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데이터가 말하는 ‘후각’과 ‘촉각’의 압도적 힘

이것은 감성적인 주장이 아니다. 뇌과학은 ‘후각’과 ‘촉각’이 다른 감각들과 구별되는, 인간성의 핵심임을 증명한다.

후각: 기억과 감정의 직통 회선

우리가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마들렌의 냄새를 맡자마자 어린 시절의 기억이 통째로 떠오른 현상이다. 하버드 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후각은 5감 중 유일하게 ‘이성’의 영역인 시상(Thalamus)을 거치지 않고, ‘감정’의 영역인 편도체(Amygdala)와 ‘기억’의 영역인 해마(Hippocampus)에 직접 연결된다.

시각이나 청각 정보는 "저것은 고양이"라고 ‘판단’한 뒤 감정을 느끼지만, 후각은 ‘판단’보다 먼저 감정과 기억을 ‘폭격’한다. NCBI 신경과학 연구는 "후각 신호와 편도체-해마 사이에는 단 2개의 시냅스만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생각’보다 빠른, 지극히 원시적인 감각이다.

‘악취’가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것은 ‘나쁜 냄새’라는 데이터가 아니라, ‘위험해!’라는 감정과 ‘피해야 해!’라는 본능을 즉각적으로 훈련시키는 강력한 생존 신호다. AI가 제공하는 ‘안전하고 살균된’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 원시적 감각이 퇴화할 수밖에 없다.

촉각: ‘나’와 ‘세계’를 구분하는 첫 감각

아기에게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은 ‘촉각’이다. 해리 할로(Harry Harlow)의 원숭이 실험이 증명했듯, ‘접촉’과 ‘스킨십’은 젖(음식)보다 더 강력한 애착의 기반이며 뇌 발달에 결정적이다.

첼로를 켤 때의 ‘삐걱대는 소리’도, 모래 놀이도 본질은 ‘촉각’이다. 내 손가락이 현을 누르는 압력, 모래가 손에 주는 저항감. 이 ‘물리적 피드백’은 AI의 시뮬레이션이 결코 줄 수 없는 ‘현실 감각’을 뇌에 새긴다.

게임 속 ‘진동’이라는 디지털 피드백과 달리, 현실의 ‘촉각’은 ‘실행 취소(Ctrl+Z)’가 불가능하다. 모래는 쏟아지면 주워 담아야 한다. 이 저항감을 통해 아이는 "나는 여기 있고, 세계는 저기 있다"는 자아의 경계를 배운다.

결국 AI가 정복한 ‘시청각’이 ‘정보’를 다루는 감각이라면, ‘후각’과 ‘촉각’은 ‘존재’와 ‘감정’을 다루는 감각이다.

AI 시대, ‘다중 감각’ 교육이 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AI가 ‘시청각’ 중심의 디지털 세계로 아이들을 끌어당길수록, 우리는 의식적으로 ‘후각’과 ‘촉각’이 살아있는 아날로그 세계로 아이들을 밀어 넣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감각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스크린 타임’ 대신 ‘베이킹 타임’을 줘라: 아이가 유튜브로 요리 영상을 ‘보는’ 대신, 직접 밀가루 반죽을 ‘만지게’ 하고, 빵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게’ 해야 한다. 끈적거리고 손에 묻는 그 ‘촉감’과, 효모가 발효되는 ‘후각’이야말로 뇌를 깨우는 ‘아날로그 데이터’다.

밀가루라는 ‘가루’가 반죽이라는 ‘덩어리’로 변하는 ‘물리적 변형’을 주도하는 경험은 — 아이에게 강력한 ‘주도성(Agency)’을 심어준다.

‘키보드’ 대신 ‘흙’을 만지게 하라: 텃밭이 바로 그것이다. 흙의 서늘한 감촉과 비 온 뒤의 흙냄새(Petrichor)는 아이의 뇌에 ‘안정감’과 ‘행복 호르몬’을 선물한다. 2007년 Neuroscience 연구는 흙 속의 특정 박테리아(Mycobacterium vaccae)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항우울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키보드의 ‘딸깍’거리는 촉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학적, 물리적 경험이다.

‘완벽한 이미지’ 대신 ‘불쾌한 냄새’도 경험하게 하라: AI가 필터링한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 갯벌의 비릿한 냄새, 숲의 퀴퀴한 낙엽 냄새, 심지어 거름 냄새 같은 ‘날것’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AI가 만들어내는 ‘살균된’ 가상 세계는 너무나 깨끗하고 안전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현실 세계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주지 못한다. 세상을 입체적으로 배우는 방식은 언제나 ‘불편함’을 동반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AI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디지털화된 감각은 마스터했지만, ‘후각’과 ‘촉각’이라는 아날로그 감각은 ‘경험’하지 못한다. AI는 ‘정보’를 알지만, ‘의미’는 모른다.

둘째, 데이터는 ‘후각’이 기억/감정과 직결되고, ‘촉각’이 자아와 현실감을 형성하는 핵심 감각임을 증명한다. 이것이 ‘인간의 영역’이다.

셋째, AI 시대의 교육은 스크린이 주는 ‘디지털 편식’에 맞서, 흙, 냄새, 반죽, 바다 등 ‘다중 감각’을 동원하는 아날로그 활동을 의도적으로 늘려 ‘감각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결국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미역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의 바다를 떠올리는 능력, 허브를 만지고 그 향기에 위안을 얻는 능력은 —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 ‘인간의 영역’, 즉 ‘육체에 기반한 감각(Embodied Senses)’을 단련시키는 것, 그것이 AI 시대에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AI에 대체되지 않는 ‘인간 고유성’의 닻이 될 것이다.

주요 참고 자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