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생인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집에 컴퓨터가 들어왔습니다. 게임기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1983년 당시 가정용 게임기 ‘매지컴’ 가격이 95,000원이었는데, 이는 쌀 한 가마니 가격의 3배가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게임 카트리지 하나가 25,000원. 부모님의 한 달 생활비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책을 더 많이 읽었습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공책에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골목에서 ‘얼음땡’을 하며 놀았습니다. VFX 개발자가 된 지금, 그때의 ‘결핍’이 내 창의성의 근원이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 아이들은 ChatGPT에게 물어보면 모든 답을 얻습니다. Midjourney가 상상을 대신 그려줍니다. 이 ‘풍요’가 두렵습니다.
결핍은 창의성의 어머니였다
뇌과학은 이 직관을 뒷받침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지루함은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를 활성화시킵니다. 이 네트워크는 백일몽을 꾸고, 상상하고, 성찰할 때 작동하는 신경 시스템입니다. 즉, 아무것도 안 할 때 뇌는 가장 창의적으로 일합니다.
70년대 말 출생자들은 강제로 이 시스템을 훈련받았습니다. 게임기가 없으니 골판지 상자로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TV 채널이 3개밖에 없으니 직접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컴퓨터가 없으니 공책에 RPG 게임을 ‘손으로’ 프로그래밍했습니다. 주사위로 확률을 구현하고, 도트 종이에 맵을 그렸습니다.
University of Lancashire 연구는 지루함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혁신적인 연결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루함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심심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뇌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결핍이 단순히 ‘없음’이 아니라 ‘채워야 할 여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백을 채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AI 시대의 역설: 모든 것이 있지만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지금 아이들은 다릅니다. "심심해"라고 말하면 유튜브 쇼츠가 ‘무한 스크롤’로 답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AI가 10초 만에 완벽한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글을 쓰려 하면 ChatGPT가 대신 써줍니다.
뉴질랜드에서 3년을 보낸 첫째는 당시 친구들과 숲에서 막대기로 놀았습니다. 막대기는 검이 되고, 지팡이가 되고, 집짓기 도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첫째는 한동안 "아빠, 심심해. 뭐하지?"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이 충격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차이는 명확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선택만’ 하면 됩니다. 선택은 창조가 아닙니다.
최근 연구는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이 증가하면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이전 세대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고 보고합니다. 수동적인 디지털 활동(영상 시청, 미리 프로그래밍된 게임)은 개방형 놀이와 상상적 탐색의 기회를 제한합니다.
문제는 AI가 제공하는 ‘완벽함’입니다. 내가 70년대에 공책에 그린 로봇 그림은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 것이었습니다. 지금 아이가 Midjourney로 생성한 로봇 이미지는 완벽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AI의 것입니다.
개발자 아빠의 딜레마: 도구를 주되 의존은 막아야 한다
VFX 개발자로서 나는 AI의 강력함을 압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ChatGPT를 씁니다. 코드 생성, 디버깅,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AI 없이는 일이 안 됩니다.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이 도구가 내 아이들의 ‘생각하는 근육’을 위축시킬까봐.
첫째와 둘째에게 나는 의도적으로 ‘결핍’을 만들어주려 합니다. 주말에는 태블릿을 치웁니다. "심심해"라는 말이 나와도 해결책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그럼 뭘 하고 싶은지 천천히 생각해봐."
처음에는 짜증을 냅니다. 둘째는 바닥에 드러눕습니다. 하지만 30분쯤 지나면 마법이 일어납니다. 레고를 꺼내거나, 형과 함께 소파 쿠션으로 ‘요새’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놀이를 발명합니다.
연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루함이 주의력, 끈기와 결합될 때 긍정적인 ‘정신적 방황(mind-wandering)’을 촉진하고 창의적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고. 반대로 지루함이 좌절과 결합되면 부정적 결과를 낳습니다.
여기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루함을 ‘견디게’ 하되, ‘좌절’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봐야 합니다. 이는 AI 시대의 핵심 교육입니다. AI가 답을 주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풍요 속 결핍 만들기: 세 가지 원칙
이것이 AI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회사에서 AI를 적극 활용합니다. 아이들도 나중에는 AI를 쓸 것입니다. 다만 ‘언제’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첫째, 지루함의 시간을 확보하세요. 하루 30-60분의 비구조화된 시간이 아이들의 창의성에 결정적입니다. "심심해"라는 말을 문제가 아니라 ‘창의성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주말 오전을 ‘스크린 프리 타임’으로 정했습니다.
둘째, 개방형 재료를 제공하세요. 레고, 블록, 종이, 크레용, 골판지 상자. ‘정답’이 없는 재료들입니다. AI가 완벽한 결과를 주는 시대일수록, 불완전하지만 ‘내가 만든’ 것의 가치를 경험해야 합니다. 첫째가 골판지로 만든 ‘로봇’은 엉성하지만, 그 안에 그의 상상이 담겨 있습니다.
셋째, 부모가 먼저 모델이 되세요. 아이들이 부모가 휴식하고, 성찰하고,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주말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아이들과 함께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거나, 베란다에서 구름을 봅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합니다.
70년대 말 출생자로서 우리가 겪은 ‘결핍’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핍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분명합니다. 상상력, 문제 해결력, 인내심. AI 시대, 우리 아이들에게는 의도적인 ‘결핍’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즉시 얻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기다리고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힘이 더 중요해집니다. 그것이 인간 고유의 ‘야생성’이고,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