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가 끝나고 열린 랩 파티에서 나는 AI 시대의 미래를 잠깐 엿봤다.
몇 주간 모니터 앞에 묶여 있던 동료들이, 라이브 밴드의 첫 코드가 울리자 — 마치 오랜 감옥에서 풀려난 것처럼 무대 앞으로 쏟아져 나갔다. 그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예측 불가능하고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였다.
그 순간 나는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말한 ‘유희의 인간(Homo Ludens)’을 떠올렸다.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발산할 수 있는 ‘몰입된 유희’의 순간. 하위징아는 1938년 <호모 루덴스>에서 "문명은 놀이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놀이 안에서, 놀이로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실현되고 AI가 대부분의 ‘일(Work)’을 대신하는 미래가 — 이런 모습일까? 일에 대한 걱정 없이, 즐거운 파티에 참여하며 여가를 보내는 삶.
하지만 그 춤추는 동료들을 보며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만약 그들이 ‘춤추는 법’을 모르거나, 라이브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없었다면 — 그 파티는 그저 공허했을 것이다. 그들은 ‘즐거움’을 수동적으로 시청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냈다.
AI 시대, ‘노는 것’은 더 이상 ‘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능력’이다.
‘일’이 사라진 미래의 공허함
우리는 ‘일(Work)’과 ‘여가(Leisure)’를 이분법으로 나눠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일은 ‘의무’고, 여가는 그 의무에서 벗어난 ‘보상’이다. 랩 파티가 그토록 즐거웠던 이유도 ‘힘든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강력한 보상 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이라는 의무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VFX 업계에서 일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일은 시간 구조를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제공하며, 공동의 목표를 주고,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취감을 준다. AI가 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면, 우리는 그 공허함을 ‘여가’로 채워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여가를 즐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잘하는 법’은 평생 배웠지만, ‘잘 노는 법’은 하찮게 여기거나 그저 ‘소비’하는 것과 동일시했다.
우리의 뇌는 ‘수동적 소비’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넷플릭스가 추천하는 영상을 보고, 틱톡이 띄워주는 클립을 스크롤하고,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소비한다. ‘일’이 사라진 막대한 시간을 AI가 추천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로만 채운다면 — 그 결과는 ‘유희’가 아니라 ‘우울’과 ‘무기력’일 것이다.
랩 파티의 ‘춤’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 유희’였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밴드의 음악을 ‘소비’하면서, 동시에 ‘춤’이라는 자신의 행위로 ‘창조’에 동참했다. 그 춤이 프로 댄서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즐길 줄 아는 능력’ 그 자체였다.
데이터가 말하는 ‘놀이’의 조건
하위징아는 놀이를 "자발적이며, 일상(필요)을 벗어나고, 그 자체로 몰입하게 하는 활동"으로 정의했다. 놀이는 ‘생산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놀이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놀이’조차 ‘일’처럼 만들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 ‘부업’으로 연결하고, 춤을 잘 추면 ‘틱톡’에 올려 ‘좋아요’를 받아야 한다. 빵 굽는 것을 즐기다가 ‘온라인 스토어’를 열어야 할 것 같고, 달리기를 하다가 ‘마라톤 기록’에 집착하게 된다.
‘즐거움’이라는 내재적 동기가 ‘성과’라는 외재적 동기로 변질되는 순간, 놀이는 일이 된다.
인지 심리학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라는 3가지 핵심 욕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이 개발한 이 이론은 30년 넘게 교육, 스포츠, 조직심리학에서 검증되어 왔다.
AI는 ‘일’을 통해 얻던 이 3가지를 위협한다. AI는 ‘자율성'(스스로 답을 찾을 필요가 줄어듦), ‘유능감'(AI의 완벽함 앞에서 인간의 실수가 초라해 보임), ‘관계성'(AI 캐릭터가 진짜 관계를 대체할 위험) 모두를 위협할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랩 파티의 ‘춤’은 이 3가지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 자율성: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춤을 췄다.
- 유능감: "나 춤출 줄 알아!"라는 ‘능력’이 만족감을 줬다. 설령 서툴더라도, ‘해냈다’는 감각이 있었다.
- 관계성: 밴드,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즐겼다. 디지털 연결이 아닌, 물리적 현존이었다.
AI 시대에 ‘취미로써 음악과 춤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즐기는 능력’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유능감’과 ‘관계성’을 제공하는 — 인간 고유의 생존 기술이다.
아이들에게 ‘노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VFX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AI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일하는 존재’다. Sora가 내가 며칠 걸려 만들 영상을 10초 만에 생성한다. Runway가 내가 몇 주 작업할 장면을 순식간에 렌더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우리는 ‘일하는 인간(Homo Faber)’을 기르는 교육에 익숙하다. 정답을 빨리 찾고,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증명하는 교육 말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유희의 인간(Homo Ludens)’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첫째 아이에게 첼로를 가르치는 이유는 첼리스트(직업)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AI가 아무리 완벽한 음악을 생성해도, 스스로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연주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을 주기 위해서다. 뉴질랜드에서 둘째가 모래 놀이를 하는 것을 본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성을 디자인해도, 손으로 직접 모래를 만지며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그 과정을 — AI는 대체할 수 없다.
AI가 ‘생산’을 책임진다면, 인간은 ‘유희’를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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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AI와 기본소득이 가져올 미래는 ‘랩 파티’처럼 즐거운 여가일 수 있지만, 그것은 ‘수동적 소비’가 아닌 ‘능동적 유희’일 때만 가능하다.
둘째, 데이터는 ‘놀이’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을 충족시키는 핵심 활동이며, ‘즐기는 것’ 자체가 ‘능력’임을 보여준다. ‘일’이 주던 심리적 보상을 ‘놀이’가 대체해야 한다.
셋째, AI 시대의 교육은 ‘일하는 법’이 아니라 ‘노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첼로, 춤, 미술 같은 ‘취미’ 교육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호모 루덴스’로서 살아가기 위한 핵심 ‘생존 기술’이다.
AI가 모든 ‘쓸모 있는’ 기술을 대체할 때, ‘쓸모없어 보이는’ 춤과 음악이 아이의 ‘내면’을 지키는 가장 쓸모 있는 방패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일’ 없이도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 즉 ‘잘 노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