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에서 나온다

"동생에게 숫자 1, 2, 3 쓰는 법 좀 가르쳐줄래?"

첫째에게 무심코 던진 부탁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첫째는 스케치북에 ‘점선’으로 1, 2, 3을 그렸다. 그리고 동생에게 펜을 쥐여주며 "자, 이 점선 따라 그려!"라고 말했다.

— 그 순간 나는 멈칫했다.

유튜브에 검색했다면 ‘숫자 띠’, ‘점토 놀이’, ‘몬테소리 교구’ 같은 훨씬 세련된 방법을 0.1초 만에 찾았을 것이다. ChatGPT에게 물었다면 발달 단계별 완벽한 교수법 10가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째 아이가 만든 ‘점선’은 그 어떤 전문가의 조언보다 정확했다. 왜냐하면 첫째는 ‘동생의 수준’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동시에 고려해 —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맞춤형 해법을 창조해 냈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동생을 가르친다’는 과제 앞에서, 자신이 가진 ‘제한된’ 자원(그림 그리기 능력, 점선에 대한 이해)을 총동원해 ‘자신만의’ 교수법을 ‘창조’해 냈다.

AI 시대, ‘창의성’의 비밀은 어쩌면 ‘완벽한 지식’이 아니라 ‘불완전한 가르침’에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소비’가 아니라 ‘설명’이다

우리는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강의를 듣고, AI에게 더 많은 정보를 ‘입력’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지식 소비자’가 되는 길이지, ‘창의적 생산자’가 되는 길은 아닐 수 있다.

‘소비’는 본질적으로 수동적이다. 뇌가 ‘고투’할 필요 없이 잘 정돈된 지식을 받아들일 뿐이다.

첫째 아이의 ‘점선’ 해법은 ‘창의적 문제 해결’의 전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문제 정의: "동생은 아직 근육 조절이 어려워 숫자 형태를 못 그린다." 단순히 ‘숫자를 모른다’가 아니라, ‘알아도 쓰지 못한다’는 더 복잡한 문제를 인지한 것이다.

자원 탐색: "내가 가진 능력은? 펜을 쥐고 선을 그릴 수 있다. ‘점선’을 따라 그리면 쉽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핵심은 ‘제한된’ 자원이다. AI처럼 무한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제한’이 창의성을 짜내는 압력이 된다.

해법 창조: "내가 먼저 ‘점선’이라는 가이드를 만들고, 동생이 그 위를 덮어쓰게 하자." 이것은 ‘가르침’을 위한 ‘인터페이스’를 설계한 것이다. 교육학에서 ‘스캐폴딩(Scaffolding, 발판 놓기)’이라 부르는 고등 교육 기법을 — 아이가 스스로 발명해 낸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첫째 아이의 뇌는 수동적으로 지식을 ‘입력’받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활성화된다. "내가 아는 것"과 "상대가 모르는 것" 사이의 격차를 인지하고,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내 머릿속의 지식을 ‘재구조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숫자 1이 뭐지? 그냥 ‘막대기’라고 하면 되나? 아니, 동생은 ‘막대기’도 못 그리잖아. 그럼 어떻게…"

이 고통스러운 ‘설명’의 과정, 이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이 바로 뇌가 발전하는 순간이다.

AI는 이 ‘설명’의 기회를 박탈한다. AI는 내가 고민할 필요 없이 완벽한 정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너무나 효율적이라, 내가 ‘고투’할 틈을 주지 않는다.

데이터가 말하는 ‘프로테제 효과’

이것은 감상이 아니라, 인지 과학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프로테제 효과(Protégé Effect)’ — ‘남을 가르치는 행위가 자신의 학습 능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이론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2009년 연구는 8학년 학생들에게 ‘Betty’s Brain’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생물학을 가르쳤다. 일부 학생들은 AI 캐릭터에게 ‘가르치는’ 조건이었고, 나머지는 ‘혼자 공부하는’ 조건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AI 캐릭터를 가르친 학생들이 더 오래 공부했고, 더 많이 배웠다. 특히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게서 효과가 두드러졌다. 2018년 코 교수팀의 메타 분석은 "가르칠 것을 기대하고 공부한 학생"이 "시험을 볼 것을 기대하고 공부한 학생"보다 1.3배 더 많은 메타인지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일까?

메타인지의 강제 활성화: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이것은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고차원적 사고다. 첫째 아이는 ‘점선’을 고안하며 "아, 나는 숫자 ‘1’을 그릴 줄 알지만, 동생은 그걸 모르는구나"라는 ‘메타인지’를 발동시켰다.

지식의 구조화: ‘가르친다’는 것은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논리적인 순서’로 ‘구조화’하는 작업이다. VFX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신입 아티스트에게 렌더링 파이프라인을 설명할 때 — 나는 내가 ‘당연하게’ 알던 것들을 다시 분해하고 순서를 매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이해가 더 깊어졌다.

책임감과 동기부여: ‘내가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은 뇌의 학습 동기를 완전히 바꾼다. 내 동생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 즉 ‘이타성’이 학습의 강력한 연료가 된다. 1984년 벤웨어와 데시의 연구는 ‘가르칠 것을 기대하며 공부’할 때 내재적 동기가 ‘시험을 볼 것을 기대하며 공부’할 때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창의성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내가 가진 제한된 지식(A)’을 ‘설명’이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식(A’)’으로 ‘재창조’하는 능력이다.

AI 시대, ‘가르치는 아이’로 키우는 법

그렇다면 이 ‘프로테제 효과’를 AI 시대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AI가 모든 답을 아는 시대, 역설적으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아는 것’보다 ‘설명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가르칠 기회’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라: 첫째가 둘째를 가르치게 하는 것은 최고의 교육 전략이다. 꼭 동생이 아니어도 좋다. 아이가 오늘 배운 것을 부모에게 ‘가르쳐달라’고 역으로 요청하라. "아빠, 오늘 배운 공룡에 대해 ‘설명’해 줄래? 아빤 잘 몰라서."

‘완벽한 답’이 아닌 ‘점선’을 칭찬하라: 아이가 ‘점선’처럼 서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 그 ‘결과’가 비효율적이더라도 그 ‘시도’ 자체를 격하게 칭찬해야 한다. "와, ‘점선’을 생각했어? 동생이 따라 그리기 쉽겠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AI를 ‘조교’로 활용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AI를 ‘교사’로 쓰지만, 우리는 AI를 ‘멍청한 학생’으로 역할극 시킬 수 있다. "ChatGPT야, 내가 지금부터 너에게 ‘레고 만드는 법’을 설명할 테니, 내 설명이 5살 아이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지 알려줘."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창의성은 ‘지식의 양(Input)’이 아니라, ‘설명의 과정(Output)’에서 나온다.

둘째, ‘프로테제 효과’는 뇌의 ‘메타인지’와 ‘지식 구조화’ 능력을 강제로 활성화하는 가장 강력한 학습법이며, 이는 AI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셋째, AI 시대의 교육은 아이가 더 많은 ‘정답’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아이가 ‘점선’을 고안했듯, ‘자신만의 불완전한 해법’을 ‘창조’하고 ‘설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결국 AI가 아무리 완벽한 지식을 제공해도, 그 지식을 꺼내어 ‘나만의 점선’을 그어보는 경험 — 즉 ‘가르쳐보는’ 경험 없이는 진정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창의력은 그렇게 ‘설명’하려는 고투 속에서 태어난다.

주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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